만덕산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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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이야기

희망을 심는다

햇살이 따뜻하다. 
봄이 어느덧 성큼 내 곁에 와 있다. 어제는 땅 끝 사구미에 계시는 동천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이 사는 집은 바다가 보이는 가파른 언덕위에 있다. 오후 햇살이 파도에 부서져 은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마당 뒤편에는 제주도 수선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웅크리고 있었다. 수선을 백련사에 심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좀 일찍 오지 꽃이 다 졌는데’ 하시면서 이왕이면 많이 심으라고 수선을 있는 대로 뽑아 주셨다. 


 



제주도 수선은 늦은 겨울에 핀다. 
매화가 옹골지게 몽우리를 품고 있을 때 수선은 꽃을 피운다. 제주도에 귀향생활을 하던 추사가 가장 사랑했다는 꽃, 수선! 물도 설고 음식도 맞지 않아 고생하던 추사에게 제주도 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겨울 찬바람은 추사의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치게 했다. 
겨우내 병으로 시달려 허약해진 몸을 추슬러 창문을 열어 본 추사는 눈물을 터트린다. 돌담 밑에 수선이 눈밭 위에 꽃을 피운 것이다. 추운 겨울이 가면 봄이 올 거라는 것을 수선은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돌담 밑에서 희망을 발견한 추사는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수선은 추사를 위로했다. 

일지암에 살 때다. 
은사스님이 조그마한 텃밭에 매화나무 10여 그루를 심으셨다. 매일 아침 매화에 물을 주는 일이 내 몫으로 돌아왔다. 암자에는 물 호스가 없었다. 그래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야 하는데 이 일이 지루했다. 빨리 할 요령으로 바가지로 한 움큼씩 물을 주고 돌아서는데 불호령이 떨어졌다. 물을 흠뻑 줘야지. 요령을 피운다는 것이다. 
한 나무에 한 양동이 또는 두 양동이, 그렇게 10여 그루에 물을 주면 오전시간이 다갔다. 그 후 몇 해 후인가. 북일 차 농장에 8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또 물을 준 적이 있다. 이번에는 다행히 물 호스가 있긴 한데 짧았다. 그날 한나절을 나무에 물주는 일로 보냈다. 

그때는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10여년이 흐른 지금 백련사에 와서 올 해는 무슨 나무를 심을까하고 마음을 설렌다. 작년에는 제주도 담팔수 나무와 구절초를 그 전에는 매화나무와 고려영산홍, 매발톱꽃을 또 그 전에는 금목서를 심었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마지못해서 심었던 매화가 이른 봄 향기로, 일지암 연못가에 3년 만에 꽃을 피운 수선은 생명의 신비로움을, 불타는 듯한 고려영산홍은 내 기억 속에 진한 화상자국을 남겼다. 옛 스승들의 글도 내게 사색의 깊이를 더한다. 







초의스님과 다산 정약용은 조그마한 초당에 머물면서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꾼다. 다산이 제자였던 황상에게 준 ‘제황상유인첩’에는 이런 글이 있다. ‘담장 안에는 석류와 치자, 목련 등 갖가지 화분을 각기 품격을 갖추어 놓아둔다. 
국화는 가장 많이 갖추어서 48종 정도는 되어야 잘 갖추었다 할 만하다.’ 국화가 48종이나 있기는 할까? 초의스님은 일지암에 연못을 파고 연못가에 영산홍을 심으셨다. 그의 시 영산홍이다. 


연못을 파니 환한 달이 잠기고 
낚싯대 던지니 구름 샘까지 통하도다. 
눈을 가리는 꽃가지를 꺾으니 
석양 하늘가에 온통 아름다운 산이구나 
연못가에 심은 영산홍이 피면 
다홍색 꽃무리 연못에 투영되고 

달이 연못에 잠기면 
우주의 섭리가 물속에 잠기는데 
그곳에서 한 잔 차를 마시면 
차茶와 선禪이 하나가 되는 
신선의 경지, 
이것이 다선일여茶禪一如 아니겠는가.


연못을 파고 영산홍을 심고 차를 마시는 일상에 우주의 섭리가 담길 뿐 아니라 선禪이 된다. 그래서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은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른 봄, 꽃과 나무를 심는 나는 꽃이 아니라 희망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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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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