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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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이야기

백운동 별서

물에는 연꽃을 심어 천연스런 자태를 아끼고, 동산에는 매화로 해맑은 품격을 숭상하며, 국화는 절개를 취해 서리에도 끄떡 않는 자태를 돌아본다. 물가에는 대나무가 있어 마음 맞음을 의탁하고, 뜨락에는 난초를 심는다. 조롱에는 학을 두어 달빛에 울고, 시렁에는 거문고가 있어 바람에 운다. 

학은 달빛에 울고 거문고는 바람에 운다. 백운동으로 유거(幽居)했던 이담로(1627-?)가 노래한 풍경이다. 승가에서는 흰구름 ‘백운’을 수행자로 비유한다. 머무는 바 없이 머물고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백운동에 깃들어 살았던 유학자는 속세의 욕망보다는 자신의 이상향을 꿈꾸었다. 그가 심었던 연꽃이며 매화, 국화 등은 단순한 꽃과 나무가 아니다.  


 

 

진흙에 뿌리를 박고 올라오는 연꽃처럼 물드지 않고 겨울 추위와 바람이 매서울수록 옹골지게 피어나는 매화향처럼 고고하게 살고 싶어하는 은거인의 애틋함이 녹아있다.
백운동 별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쇄원, 명옥헌 처럼 몇 남지 않은 호남 전통 원림을 간직한 별서다. 강진의 금당리 원주 이씨 마을 출신의 장사랑을 지낸 이담로가 세상 인연을 끊고 백운동으로 들어와 손수 백운유거(白雲幽居) 현판을 걸고 만년을 보낸다. 학문과 글 솜씨로 이름이 높았던 이담로는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글을 남기고 사후에 좌승지로 추증된다. 

장사랑은 정9품의 말단관료이다. 반면에 좌승지는 정삼품의 당상관으로 단숨에 6등품을 뛰어 오른 것이다. 백운동별서에서 은거하면서 살았던 이담로의 모습이 당시 많은 지성인들이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11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백운동 별서는 다산 정약용으로 인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812년 음력 9월에 다산과 초의는 백운동별서로 소풍을 간다. 하룻밤 잤다는 말도 있고 며칠 밤을 놀면서 보냈다는 말도 있는데 확실한 것은 이 노인네가 다산초당에 돌아와서도 백운동을 잊지 못하고 꿈결에 뒤척이며 후유증을 앓았다는 사실이다. 초의로 하여금 ‘백운도’를 그리게 하고 뒷붙여 12가지 향기로운 이야기를 읊어 주었다. 끝에는 다산도를 따로 그려 붙여서 우열을 가려보자며 치기를 부리기도 한다.

 




다산과 초의 두 스승은 백운동별서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이 그토록 당대 두 지성인들의 가슴을 울렸을까? 그 의문은 나로 하여금 가을병을 앓게 만들었다. 그래서 월출산에 단풍이 들면 묵은 병이 도지는 것처럼 백운동을 찾는다. 
그리고 소나무 아래 정선대에 올라 백운동 단풍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는 12승사 중 첫번째인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玉版爽氣’을 찾아 성전 차밭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다. 그렇게 해서 찾은 ‘숨겨진 차밭’에서 천불동이라고 불려졌던 기암바위들과 언덕위 차나무들을 바라보며 눈을 밝히기도 했다.

올해 백운동 별서를 지켰던 이담로의 11대손 이효천 옹이 돌아가셨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매번 인사를 드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손사래를 치곤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노부부 두분이 닭을 키우며 별서를 지키고 사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이젠 그 모습조차 볼 수 없다. 몇해전 강진군에서 별서를 복원한다고 공사를 했었다. 
담장을 치고 유상곡수流觴曲水 계곡물을 끌어들여 굽이쳐 흐르는 물길을 만들고 건물을 짓고 했다고 한다. 그 의도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옛 모습을 복원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꾸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백운동별서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깃들었던 곳이다. 은거라는 형태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수백년이 흐른 뒤에도 그 분들의 이야기가 계속되어지는 것을 보면 사회에 던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백운동 별서를 복원한다는 것은 건물 한 두채 복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그시대 지성인들이 은거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정신, 소중히 여겼던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별서를 지키셨던 이효천 옹을 떠나 보내고 인적 없이 쓸쓸한 백운동 별서를 보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자신을 돌이켜 본다.

요즘은 유명한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말춤을 춘다. 텅 비어 버린 백운동 별서를 보면서 말춤을 추는 정치인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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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자는jpg백운동_01.jpg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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