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동백은 추위를 품은 겨울부터 봄까지 그 꽃을 피우지만
‘남국(南國)’의 온난한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어서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동백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자라는데, 강진 백련사는 동백 자생지의 중심으로 여수 오동도와 고창 선운사만큼이나 동백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는 백련사 동백숲은 고려 말 원묘국사가 백련사를 중창(重創)하면서 화재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8천여 그루의 동백이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 다소 이국적인 남방 쪽 나무들과 뒤섞여 자라고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버텨온 동백이 1만 여 평 대지에 붉은 꽃을 피워낼 때는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백련사의 또다른 자랑인 차나무 역시 동백나무과에 속하니, 백련사는 동백과의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동백은 지역마다 수종에 차이가 있는데 백련사 동백나무는 잔 가지가 많고 잎이 작으면서 빛깔이 진하며 꽃의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11월 말부터 듬성듬성 피기 시작하는 꽃은 겨우내 피어나다 3월 말경에 만개하고 4월에 이르면 한꺼번에 떨어지면서 땅을 온통 꽃무더기로 수놓습니다.
백련사에서 서쪽 능선 방향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백 군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름이 20~30cm에 키가 5~7m에 이르는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서 군락 안으로 들어가면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입니다.
숲 곳곳에는 승탑들이 있는데, 월인당(月引堂) 외에는 명문이 없어서 주인을 알 수 없습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행호토성을 넘어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는 백련사에서 관리하는 차밭이 있고, 사찰 뒤편의 석름봉 오르는 길에는 수백 년 전부터 자생해온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고재종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꾳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
<제16회 2002년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