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 급한 동백은 보이는 듯합니다. 매화는 아직이죠. 이제 움터서 한두 개 피려고 하긴 해요.”
“첫 매화 필 때 꼭 알려주세요! 내려가서 그리려고요.”
“네. 곧 필 듯합니다. 저도 매일 매화 봉오리 보며 노심초사한다는….”
전남 강진 백련사 주지 일담 스님에게 재촉 중이다.
하하. 입춘이 지나면 매화, 동백이 보고 싶어 몸살이 난다. 지난해 3월 초에도 백련사로 달려 내려가 동백과 매화를 그렸다. 장독대 옆에 고개 숙여 피고 있던 할미꽃도 함께. 겨울 몇 달 동안 꽃 없는 인왕산, 서촌 골목길을 지나다니는 게 너무 팍팍하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꽃이 너무 그립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꽃을 그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속으로 꽃 그리는 화가들을 비웃기까지 했다. 세상에 그려야 할 의미 있는 주제와 풍경이 이렇게 많은데, 예쁘다는 이유로, 잘 팔리는 그림이라는 이유로, 꽃을 그리다니! 한심하기는! 하는 식이었다.
우연히 진달래꽃을 그리게 됐다. 이른 봄 산에서 잠깐 피었다 지는, 도시에서는 만나기 힘든 진달래꽃. 뒷산 진달래를 꺾어다가 진달래화전 부쳐 먹는 자리에 함께했다가, 홀린 듯 진달래꽃을 그렸다. 펜으로 그린 다음 수채 물감을 살짝 입혀보니 너무 고왔다. 진달래꽃을 그렸으니, 개나리꽃도 한번 그려볼까? 그럼 사과꽃도?
그렇게 시작해서 복숭아꽃, 배꽃, 자목련, 라일락, 민들레, 목단, 봉숭아, 감자꽃, 채송화, 해바라기, 옥잠화, 맨드라미…. 인왕산으로, 서촌 골목길로, 이웃집 마당으로… 꽃을 쫓아다니며 100개의 꽃그림을 그렸다. 2015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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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82207.html#csidx2fd9b6b5908f6d28f138ae876fa2422
